성분으로 보는 아모레퍼시픽 연구 이야기 #1
글 박종희
Editor's note
연구원 신입사원 시절, 제 멘토님께서는 시간 날 때마다 원료를 발라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량 들어가는 원료도 제품 안에서는 그 사용감이 다 느껴진다면서 원료를 많이 발라보고 그 사용감을 기억하는 것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재료들의 맛이 강하거나 미세하게 모두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짬이 날 때마다 원료를 발라보던 그 시절 제가 제일 좋아해서 매일 발랐던 원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INTRO
첫 칼럼의 주제는 희석된 원료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제품만큼 좋았던 저의 애착 성분 히알루론산입니다.
히알루론산은 자신의 무게의 300~1,000배에 달하는 수분을 끌어당길 수 있는 물질로, 뛰어난 보습 능력 덕분에 뷰티와 헬스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데요. 인공눈물, 화장품, 미용 시술 필러 등에서 사용되고 있어 이미 친숙한 성분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사실 히알루론산은 우리 몸의 피부, 관절, 눈 등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래 인체에 존재하는 성분이기 때문에 생체 적합성이 높고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어, 의료용 소재부터 화장품 원료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직접 생산한 HA powder와 HA 1% 용액]
아모레퍼시픽과 히알루론산의 만남
아모레퍼시픽이 히알루론산(Hyaluronic Acid, HA) 연구에 뛰어든 역사는 상당히 깊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단순히 원료를 사서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 직접 생산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를 오래전부터 이어왔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히알루론산 연구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0년대 생물을 이용해 물질을 생산/가공하는 바이오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천연물질들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빠르게 적응해 온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도 본격적으로 히알루론산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히알루론산 연구 연혁]
1980년대 후반까지 주로 해외에서 수입해왔던 히알루론산은 1g당 수십만 원을 호가하던 초고가 원료였습니다. 주로 닭 벼슬에서 추출했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어렵고 동물권에 대한 고민도 있었죠.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안산 공장 내에 미생물 발효 설비를 갖추고 자체 생산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안산 공장의 첨단 발효 탱크를 활용해 국내 최초로 미생물 배양을 통한 히알루론산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일본과 유럽 기업들이 독점하던 시장에 던진 엄청난 도전장이었습니다.
닭 벼슬 대신 특정 균주(연쇄상구균 등)를 배양해 히알루론산을 얻어내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의 생명공학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원가 절감과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면서 고가 화장품에만 조금씩 넣던 히알루론산을 대중적인 제품에도 아낌없이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원료는 최초의 바이오화장품인 리바이탈 바이오 제품부터 이후 개발된 마몽드, 라네즈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에 주요 보습제로 사용되었습니다.

[1984년 8월 2일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최초의 바이오화장품 리바이탈 바이오]
안산 공장에서 축적된 이 발효 기술은 이후 아모레퍼시픽의 계열사였던 바이오랜드 (현 현대 바이오랜드) 등으로 이어지며 더욱 전문화되었습니다.
당시 안산 공장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우리 손으로 직접 키운 균이 뱉은 히알루론산이 수입산보다 훨씬 깨끗하다"라는 자부심이 컸다고 합니다. 수입 원료의 수급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이 발효 탱크의 온도와 습도를 관리하던 연구원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아모레퍼시픽 R&I 센터에 전해지는 흥미로운 연구 에피소드로 남아있습니다.
필러에 쓰이는 히알루론산?
히알루론산이 쁘띠성형을 위한 필러로 쓰인다는 사실을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화장품에서 쓰는 히알루론산과 필러에 쓰는 히알루론산은 어떻게 다를까요?
같은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목적에 따라 구조를 다르게 만듭니다. 화장품에서의 히알루론산은 피부 보습을 위해 수분을 끌어당기고 유지하는 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피부에서 비교적 빠르게 분해됩니다. 반면 필러용 히알루론산은 피부 아래에서 볼륨을 형성하고 일정 기간 동안 형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교(cross-linking)라는 과정을 거쳐 3차원의 그물망 구조를 만들고, 체내에서 이동하거나 분해되는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설계합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필러는 수개월에서 1년 이상 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4년에는 히알루론산을 고도로 정제해 얼굴 볼륨을 높이는 "필러" 제조 기술로 NET(신기술) 인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클레비엘은 기존 필러 대비 2배 이상의 히알루론산을 포함한 고밀도 HA 필러로, 차별화된 독자기술("4L 가교공정 기술")을 통해 기존 HA 필러로 구현이 어려웠던 지속력을 극대화한 물성을 구현했습니다.
고밀도 고탄성의 클레비엘 커투어 제품을 통해 안면 교정 시술이 가능해졌고, 점성과 응집력을 최적화해 자연스러우면서도 탄탄한 볼륨 효과에 특화된 클레비엘 볼륨 제품까지 개발하여, 앞광대 등 얼굴의 전 영역에 시술이 가능해졌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HA 필러 클레비엘 볼륨 & 커투어]
먹는 히알루론산
아모레퍼시픽이 화장품뿐만 아니라 시술용 전문의약품까지 만들었을 만큼 히알루론산에 있어 스펙트럼이 넓고 기술력의 깊이도 깊은 회사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아모레퍼시픽은 히알루론산 원료 생산부터 분자량 조절, 가교까지 정교하게 다루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뿐만 아니라 히알루론산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는데요. 이너뷰티 제품으로도 유명한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을 넘어 건강기능식품용 히알루론산까지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먹고 발라 피부 보습 효과에 시너지를 내는 지금의 홀리스틱 롱제비티와 연결이 되는 제품도 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개발한 HA 원료가 실험 테이블 위 물을 흡수하는 영상>
피부 속에 존재하는 히알루론산은 수분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피부 속 히알루론산의 양은 점차 감소합니다. 그 결과 피부의 수분 유지 능력이 떨어지고 건조함이나 잔주름이 쉽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히알루론산은 단순한 보습 성분을 넘어 피부 수분 환경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재로 연구되어 왔습니다.
화장품에 사용하는 히알루론산의 분자량이 크면 어떻게 될까요? 피부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피부 위 각질층에서 수분을 붙잡고 있게 되겠죠? 피부 속에서 수분을 붙잡고 있게 하려면 각질층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작아져야 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히알루론산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분자량을 정교하게 컨트롤하여, 이중 발효와 10단계 농축, 정제 과정을 거쳐, 기존보다 약 2,000배 작은 히알루론산을 만들고 "블루 히알루론산"이라는 이름이 붙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네즈 제품에서 피부 속부터 표면까지 수분을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아모레퍼시픽 히알루론산 연구 스토리 - 세대별 HA 기술]
이렇게 히알루론산은 단순한 보습 원료를 넘어, 아모레퍼시픽의 연구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소재이기도 합니다. 원료를 직접 발라보며 사용감을 기억하라는 멘토님의 말씀 덕분에 저는 원료에 관심이 많은 연구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그 선배님이 읽어 주신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네요.

<전시 "뷰티과학자의 집"을 위해 사내에서 제작한 POP>
#OUTRO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제품 속에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연구의 시간이 쌓여 있습니다. 이번 칼럼을 통해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흥미롭게 바라보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저의 애착 원료는 히알루론산이었는데요. 여러분에게도 각자 좋아하는, 혹은 궁금했던 성분이 하나쯤 있지 않나요? 다음 칼럼에서는 또 다른 아모레퍼시픽의 흥미로운 원료 이야기를 들고 오겠습니다. 그 성분이 여러분이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원료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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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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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연구인프라운영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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