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티놀 – 끝까지 오롯이 전달하기 위한 연구 - AMOREPACIFIC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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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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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놀 – 끝까지 오롯이 전달하기 위한 연구

성분으로 보는 아모레퍼시픽 연구 이야기 #2

박종희 연구인프라운영 Lab

 

Editor's Note


연구원 신입사원 시절, 제 멘토님께서는 시간 날 때마다 원료를 발라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량 들어가는 원료도 제품 안에서는 그 사용감이 다 느껴진다면서 원료를 많이 발라보고 그 사용감을 기억하는 것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들어간 재료들의 맛이 강하거나 미세하게 모두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짬이 날 때마다 원료를 발라보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원료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INTRO


지난 칼럼에서 저의 최애 성분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저를 눈물 나게 했던 애증의 성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주름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사용해 보거나 들어봤을 레티놀과 레티노이드 가족들입니다.

 

 

다루기 어렵기로 유명한 레티노이드류 성분들

 

레티놀이 비타민 A 계열 성분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비타민 A와 관련된 성분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카로틴류’와 ‘레티노이드류’가 있는데요. 쉽게 말해 레티노이드는 비타민 A 계열 성분들의 큰 가족 이름이고, 레티놀은 그중 화장품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성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레티노이드 3가지를 제품에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데요. 하나는 태평양제약으로 판매될 신약 개발을 하던 시절에 저를 울게 했던 레티노익애씨드(트레티노인, 전문의약품 원료)와 3세대 레티노이드라고 불리는 여드름 치료제 아다팔렌(전문의약품 원료), 그리고 병의원 전용 여드름 라인 화장품 개발 당시 사용했던 레티놀입니다.

신입 시절에 저는 외용제, 즉 연고라고 불리는 피부용 의약품과 병의원 전용 화장품을 개발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왜 의약품을 개발했지?”라며 궁금해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 아모레퍼시픽 그룹에 태평양제약이 있던 시절, 태평양제약으로 나가는 제품들을 아모레퍼시픽 R&I 센터(구 태평양 기술연구원,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의약품 연구소에서 개발했었습니다. 의약품 연구소는 중간에 메디컬뷰티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네요.

여하튼 레티노이드는 뛰어난 효과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성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레티놀과 레티노익애씨드는 빛과 열, 산소에 매우 민감해서 실험을 하는 동안에도 분해가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오늘 만든 샘플이 다음 날이면 색이 변하고 효능이 떨어져 있는 경우도 흔했지요.

 

 

<레티놀 분석에 사용하는 갈색 유리병. 일반적인 투명한 실험 도구와 달리 빛을 차단해 준다.>

 

 

특히 의약품용 레티노익애씨드를 개발하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새벽까지 실험실에 남아 안정도를 확인하고, 논문을 찾아 읽고, 해외 의약품들을 분석하며 수십 가지로 조합을 바꿔봤지만 결과는 번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은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도저히 제가 목표로 한 만큼의 안정도가 나오지 않아 실험실에서 몰래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선배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레티놀 소재 연구를 하던 선배님께서는 “원래 레티놀은 굉장히 예민한 성분이라 안정도를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데 레티노익애씨드는 더 민감한 데다 크림도 아닌 액상 제형이면 당연히 더 어렵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어려운 연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드름 치료제에서 주름 개선 화장품으로

 

레티노이드 연구는 원래 여드름 치료제 개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춘기 시절 여드름으로 피부과를 방문한 적이 있으시다면, 레티노익애씨드(원료 의약품명: 트레티노인) 같은 레티노이드 계열 치료제를 처방받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여드름 치료제로 개발된 레티노익애씨드가 이를 사용한 환자들의 주름을 줄여주는 것이 발견되면서 화장품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긴 것입니다.

 

 

<레티놀 0.1% 제품의 2주 임상 결과. 주름 개선 효과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레티노익애씨드는 효과가 강한 만큼 자극 가능성도 높고, 의약품 원료로 분류되기 때문에 화장품에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부 속에서 레티노익애씨드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 레티놀을 화장품에 보다 적합한 형태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이어지게 됩니다.

레티놀은 피부 속에서 레티날(retinal)을 거쳐 다시 레티노익애씨드 형태로 변하면서 피부 세포의 턴오버와 콜라겐 생성에 관여합니다. 이 중 레티노익애씨드는 피부 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활성 형태에 가까운데, 효과가 강한 만큼 자극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반면 레티놀은 거치는 단계가 더 많기 때문에 비교적 화장품에 활용하기 적합한 형태로 개발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잔주름과 피부 결, 탄력 개선에 대한 연구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피부에 흡수된 이후 레티놀이 활성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

 

 

농도가 높을수록 더 좋을까? 제품 개발의 역사

 

이렇게 좋은 레티놀이라면 “농도가 높을수록 더 좋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빛과 산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고, 피부 속에서 활성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자극 가능성도 함께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티놀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고함량을 넣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불필요한 자극은 줄이면서도 필요한 양을 안정적으로 피부 속까지 전달하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비교적 고농도의 레티놀 제품들이 출시되어 있는데, 왜 한국에는 많지 않을까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사실 과거에는 피부 자극을 줄이면서 고농도 레티놀을 적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구권에 비해 아시아 사람들의 피부는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농도에서도 붉어짐이나 건조감, 따가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에 최근의 레티놀 연구는 단순히 농도를 높이는 방향보다는, 각 나라별 고객의 피부 특성에 맞춰 효과와 사용감을 함께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레티놀 연구에서도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레티노이드가 피부 노화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본격적으로 발표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아모레퍼시픽은 당시 미국 미시간 의대에 재직 중인 강세원 교수와 인연을 맺고 레티놀 연구를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레티놀은 효과는 뛰어났지만 빛과 열에 매우 불안정하고 피부 자극을 일으키기 쉽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강세원 교수의 임상적 견해와 기술 자문을 바탕으로 안정화 기술 연구를 진행했고, 마침내 1997년 한국 최초의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으로, 고함량 레티놀이 함유된 ‘아이오페 레티놀 2500’을 선보이게 됩니다.

 

 

<1997년 출시된 ‘아이오페 레티놀 2500’과 레티놀 화장품의 역사>

 

 

이 인연은 단순한 제품 개발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피부 장벽, 피부 노화, 메디컬 뷰티 연구로 협업이 확장되었고, 지금은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과의 공동 연구 플랫폼인 NBRI(New Beauty Research Initiative)를 통한 피부 장수(Skin Longevity)와 후성유전학 기반의 차세대 피부 연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끝까지 오롯이 전달하기 위한 노력

 

한편 레티놀의 불안정성은 제품 개발 단계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형 안정도와 함량 기준을 확인하기 위해 제품 속 레티놀을 추출해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계속됐습니다. 빛과 산소로부터 안정적으로 보호되고 있던 레티놀은 제품 밖으로 꺼내 분석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빠르게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분석 실험이 진행되는 불과 10시간 남짓 동안 레티놀이 10% 이상 소실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이 성분은 정말 나를 싫어해서 도망가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곤 했습니다.

레티놀이 계속해서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레티놀 기능성 화장품의 함량 기준과 생산 관리의 법적 기준이 점점 더 까다로워지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은 또다시 넘어야 할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이제는 더 이상 레티놀 기능성 제품을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런데 결국,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내는 우리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제형 연구원들은 안정도를 높이기 위한 처방을 끊임없이 개선했고, 생산과 충진 과정에서 산소 접촉을 최소화하는 시스템까지 새롭게 개발했습니다. 또 패키지 연구에서는 빛과 산소를 최대한 차단할 수 있도록 레티놀 전용 차광·에어리스 특수 용기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서로 조직과 역할은 달랐지만, “불안정한 레티놀을 끝까지 안정적으로 고객에게 전달하겠다”라는 목표만큼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렇게 연구원과 생산 현장, 패키징 연구 인력까지 모두의 노력이 하나로 이어진 끝에, 레티놀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제품으로 다시 고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레티놀 안정화 기술이 발전해온 역사>

 

 

사실 레티놀을 화장품에 넣는 것 자체는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기간 동안 레티놀 함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마지막까지 피부 효능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아이오페 레티놀 2500’으로 한국 최초의 레티놀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을 선보였던 그때부터 30여 년 동안 레티놀 안정화 기술에 매달려온 이유도 결국은 고객에게 주고자 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고객이 제품을 처음 사용할 때뿐만 아니라, 끝까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효능과 품질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지요.

초기에는 레티놀 자체를 안정적으로 화장품에 담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후 연구는 피부 자극을 줄이고 흡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형뿐만 아니라 생산 설비와 산소 차단 용기까지 총동원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레티놀의 효능을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힘쓰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오랜 시간 이어진 레티놀 연구는 외부에서도 의미 있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순수 레티놀 안정화 기술은 2022년 대한민국 기술대상 장관상을 수상했고, 2024년에는 IR52 장영실상을 받았습니다.

학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도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피부에 바르는 것을 넘어, 피부 안쪽 환경까지 함께 관리할 수는 없을까?” 아모레퍼시픽 역시 피부 건강과 효능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관련 이너뷰티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실제로 비타민 A 계열 성분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 개발 과정에서 피부 관련 효능 평가도 함께 이루어졌는데요. 단순히 “무엇을 바를까”를 넘어, 피부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OUTRO


레티놀은 여전히 까다로운 성분입니다. 고농도 제품은 주로 저녁에 사용해야 하고, 처음 사용하거나 피부가 예민한 날에는 따갑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레티놀을 찾는 이유는, 그만큼 확실한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성분이기 때문입니다. 안정성을 잡느라 저를 그리도 애먹였던 레티놀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제 화장대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성분이 되어, 나이트 스킨케어 루틴에서 빼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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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아모레퍼시픽 연구인프라운영 Lab
기술을 이야기로 바꾸는 호기심 부자
  • 아모레퍼시픽 R&I 센터에서 기술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연구원
  • 헤리티지가 담긴 아모레퍼시픽의 연구와 기술을
    이야기로 풀어서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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