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을 만나다. - AMORE STORIES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들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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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을 만나다.



비디오영역


아모레퍼시픽은 ‘기술과 정성으로 아름다움과 건강을 창조하여 인류에 공헌한다’라는 한결같은 꿈으로 기업을 이끌어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소명을 가지고 모든 존재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며 그 잠재력에 주목합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New Beauty의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와 같이 혹은 다른 방식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뉴스스퀘어가 세계를 무대로 아름다움을 완성해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다섯 번째 주인공은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장원(粧源) 서성환 선대회장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24년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부터 개성 상인인 어머니를 도와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후,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서성환 선대 회장의 삶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합니다. 식민지 경제체제로 인한 가난, 일제에 의한 강제노역, 6.25 전쟁의 발발 등 희망보다는 절망이 컸던 격동의 시기 속에서도 화장품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추구한 그의 삶은 늘 생기를 품은 채 빛났습니다. 또한 서성환 회장의 여정이 더욱 아름다웠던 이유는 모든 발걸음이 사람과 세상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태평양 박물관을 설립하고, 우리 차를 복원하고자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차 사업에 뛰어들며, 어머니를 떠올리며 여성 가장들의 복지를 위해 힘쓰는 등, 그는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업가이기 이전에 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법을 고민했던 한 인간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큼직한 지구본을 놓아두고 군데군데 지워질 정도로 많이 돌려보며 세계로의 도약을 꿈꾸던 서성환 회장의 바람이 결실을 이룬 현재, 아모레퍼시픽이 전 세계로부터 사랑받는 이유 역시 이러한 그의 철학에 기반했기 때문 아닐까요? 아름다움을 만드는 회사, 아모레퍼시픽을 세우고 세상에 무수한 아름다움을 남긴 사람, 서성환 선대회장을 만났습니다. (* 서성환 선대회장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녹취록과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1990년대 초반 회사가 위기를 맞았던 시절, 아들과 함께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때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 화장품이야말로 나의 꿈이자 삶 자체이며, 화장품 없는 나의 인생은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고 답했지요 “아름다움은 제가 영원히 추구해 나갈 삶의 목적이자 이유입니다.”

- 장원 서성환에게 근본적인 아름다움이란… -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粧源) 서성환 선대회장



Q. 회장님께서 화장품의 길로 들어선 데에는 모친 윤독정 여사의 영향이 컸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엌에서 손수 동백기름을 만들어 개성 시전에서 장사를 시작하셨고, 이것이 인기리에 팔리면서 1937년에는 아모레퍼시픽의 모태가 된 창성상점을 세워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드셨죠. 회장님이 보시기에 어머님의 동백기름은 무엇이 달랐나요?


어머니의 동백기름은 무엇보다 품질이 좋았지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다란 가마솥 앞에서 암갈색 열매의 껍질을 벗겨 곱게 빻은 다음, 그 가루를 기름틀에 넣고 동백기름을 짜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만드셨죠. 또한 보부상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며 남쪽 지방의 질 좋은 동백 열매를 구하기 위해 힘쓰셨습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제가 원료 수급을 맡아 낡은 자전거에 하루치 도시락 세 개가 든 보따리를 태우고 남대문 시장이 있는 서울까지 180리 길을 오가곤 했습니다. 좋은 원료를 찾느라 시장을 이리저리 누빈 후 원료 한 짐을 싣고 돌아오면 개성에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Q. 어머님과 함께 일한 경험을 통해 어떤 가르침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 해 남짓 개성과 서울을 오고 가며 화장품 원료 전반에 대한 식견을 쌓은 후엔 어머니로부터 화장품 제조법을 배웠는데요. 제조 공정이라고 해야 물과 기름을 섞어 열을 가하면서 저어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똑같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듯 물과 기름의 비율이나 불의 강약 등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당시 어머니께서 “기술은 훔쳐도 자세는 훔칠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는 제가 사업을 일궈 나간 평생 되새긴 가르침이었습니다.


서성환 선대회장의 모친, 윤독정 여사

재료를 압착해 기름을 짜는 기름틀 *온양박물관 소장





Q. 창성상점의 일을 한창 배워 가시던 중 일제에 의해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집돼 고초를 겪으신 걸로 압니다. 1945년 마침내 광복을 맞은 후 개성으로 돌아와 창성상점의 이름을 ‘태평양상회’로 바꾸셨는데요. 당시 이름을 바꾸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은 베이징에 강제 징집되어 끌려온 조선인 청년들에게 겨우 2개월 분량의 쌀을 지급하며 제대시켰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낯선 타국에서 고향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막막했죠. 일단 조선인 청년들과 함께 임시 거처를 구해 고향으로 돌아갈 방편을 마련해보기로 했습니다. 베이징에 머물며 방문한 500년 전통의 다 자란 시장에서 드넓은 세상을 마주했습니다. 언젠가는 더 넓고 큰 세계로 나가 우리나라의 화장품을 팔아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된 계기지요. 개성으로 돌아온 후, 가족들에게 상점 이름을 ‘태평양상회’로 바꾸고 싶다고 했습니다. 태평양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이자,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으니까요.




Q. 1984년 출시한 ‘메로디 크림’에 붉은 장미가 화사하게 핀 감각적인 상표를 적용하고, 1951년 6.25 전쟁 와중에도 당시 국내 최초로 순 식물성 포마드 ‘ABC 포마드’를 개발하는 등 태평양의 초반 행보를 살펴보면 품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도전이 단연 돋보입니다. 그러한 자세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까지 이어지는 것 같고요.


베이징에서 귀국하기 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 군복을 염색해 팔았던 적이 있습니다. 염색약으로 여러 번 공을 들여 염색해 얼룩 없이 물이 들었고, 금세 팔렸지요. 그때 ‘좋은 물건은 어디서든 팔린다.’는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세계를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특히 과학과 기술에서 우위를 선점해야 합니다. 기술은 진보하고, 배운 것만 가지고 나아가면 결국 뒤처지게 되어 있죠. ABC 포마드로 성공을 거둔 이후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세운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저는 품질의 중요성에 대해 틈날 때마다 강조하곤 했는데, 고맙게도 아모레퍼시픽이 제 뜻을 잊지 않고 이어가 주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순식물성 포마드, ABC 포마드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의 태평양화학공업사 연구실





Q. 회장님께서는 특히 화장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대한 열망이 남다르셨던 걸로 압니다. 1990년대 초반에 이미 프랑스 사르트르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신 후 제품 생산을 시작하셨고, 1997년에는 롤리타 렘피카 향수를 발매해 성공을 거두셨죠. 이는 어떤 경험의 영향일까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10년 뒤인 1960년, 프랑스 거대 화장품 기업인 코티사의 초청을 받아 40여 일간 유럽 시찰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기술 확보가 절실했지만, 그 답을 국내에서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외국의 선진기술 습득이 유일한 활로였기에 부푼 기대를 안고 유럽으로 떠났지요. 프랑스에 도착해 첫 사흘 동안은 코티사를 견학했습니다. 1만 평이 넘는 대지 위에 3층 높이로 우뚝 선 공장 안에서 자동화된 생산 공정과 수십 개의 원료 탱크를 목도했죠. 내부를 돌아보며 몇 발짝마다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않은 시설로 근대화된 공장을 이룩하고, 프랑스에 우리 손으로 만든 제품을 심어보리라는 목표를 품었습니다. 기업가로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정표가 보였달까요?




Q. 유럽 시찰에서 보고 깨달으신 것 중 이후의 사업에 적용하신 것이 있나요?


당시 프랑스 남부의 그라스, 독일 함부르크, 스위스 제네바 등을 방문하면서, 지역마다 다른 물빛과 흙빛, 대기의 냄새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향수의 고장인 그라스의 농장에서는 꽃잎이나 건초를 압축해 원액을 얻는 과정을 지켜보며 식물성 원료의 가능성을 확인했지요. ‘우리도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의 것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인삼 화장품을 시작으로 한방 화장품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 인삼 향이 날리던 개성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습니다.


유럽 시찰 중인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Q. 인삼 화장품과 같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물성으로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에도 꾸준히 기여하셨지요. 현재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내에 자리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모태인 태평양박물관도 회장님의 뜻이셨다고요.


늘 우리가 만드는 아름다움의 근간은 전통문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 후반에는 생산 시설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박물관을 세우는 파격적인 시도도 했지요. 1979년에는 우리나라의 화장문화의 역사를 말해주는 태평양화장사관을, 1981년에는 차 문화 유물을 집대성한 태평양다예관을 개관하며 태평양박물관을 완성했고요. 박물관을 가꾸어 나가는 일은 사업을 하면서 느꼈던 기쁨과는 결이 다른 즐거움과 보람을 주었습니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이 설화문화전과 같은 다양한 문화 메세나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것을 보면 뿌듯할 따름입니다.




Q. 아모레퍼시픽의 출판을 통한 문화 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올해로 창간 65주년을 맞이한 <향장>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뷰티 매거진이기도 합니다.


사업 초기부터 소비자와의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효과적인 소통법을 고민하다가 1958년 미용 월간지 <화장계>를 창간하였습니다. 이를 1963년에는 <난초>로, 1972년부터는 <향장>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해 발행해 왔지요. 뷰티 정보뿐만 아니라 사회 이슈에 대한 칼럼, 문학작품 등 다양한 콘텐츠가 담겨 있죠. 과거의 라이프스타일과 사회상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Q. 아모레퍼시픽은 1956년 장업계 최초로 광고에 모델을 출연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1957년 장업계 최초 잡지광고 게재, 1970년 우리나라 최초 신문 전면 컬러 광고 게재 등 대한민국 장업계 광고 또한 선도해 왔습니다. 광고에 대한 회장님만의 철학이 있으신가요?


소비재, 그중에서도 화장품 사업은 광고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데 효과적이니까요. 그 중요성을 알기에 장업계에서 입지를 확실히 다진 후에도 매출의 5%를 광고비로 사용했습니다. 광고는 비용이 아니라 자산입니다. 미래의 자산. 그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지요.




Q. 1964년에 시작하신 방문판매 브랜드 ‘아모레’는 아모레퍼시픽 역사의 혁신적인 전환점이었는데요. 특히 1960~70년대에 방문판매가 태평양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방문판매를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유통 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시골 장터에서는 태평양 제품과 모조품이 같은 자리에서 버젓이 팔리기도 했지요. 공들여 만든 제품을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이웃들이 찾아와 안방에서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안방은 여성들이 모여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죠. 그래서 고객들이 안방에서 제품을 직접 발라보고 설명도 들으면서 각자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선택할 수 있는 방문판매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Q. 방문판매는 6.25 전쟁 후의 여성들에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주었지요. 아모레 화장품을 사용하는 고객과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늘 여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모레 판매원을 모집할 당시 전선에서 남편을 잃고 또 다른 생계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부모가정의 여성에 주목했습니다. 여성 가장들이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동백기름을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돌봤던 어머니를 보고 자랐기에 늘 여성 가장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모레 방문판매원





Q. 얼마 전 다녀온 제주 여행에서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는 오설록 티 뮤지엄을 방문했는데요. 그곳에서 예전에는 극소수만 즐기는 고급 기호 식품이었던 녹차가 현재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음료가 된 것이 회장님께서 녹차의 산업화와 대중화에 힘쓰신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녹차를 즐겨 마시던 저는 미국에는 커피가 있고, 영국엔 홍차가 있듯 나라마다 대표적인 차가 하나씩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뚜렷이 내세울 차가 없는 점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태평양의 화장품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1970년대 후반, 과거에 있었으나 사라진 우리나라만의 전통적인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행동하기로 마침내 결심했습니다. 5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직접 발로 뛰며 제주 서광 지역과 도순 지역 황무지를 사들여 개간을 시작했죠. 처음 긴급회의를 소집해 임원들에게 녹차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할 땐 물론 반대가 심했습니다. 실제로 사업 초반만 해도 몇십억의 투자비를 썼음에도 매출은 5천만 원 정도에 불과했죠. 하지만 저에게 녹차 사업은 단순히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재창조하는 일이었지요.


녹차밭에서 묘묙을 살피는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Q. 아모레퍼시픽의 소명이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 인데요. 회장님에게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990년대 초반 내부 파업이 이어지며 회사가 위기를 맞았던 시절, 아들과 함께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때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 화장품이야말로 나의 꿈이자 삶 자체이며, 화장품 없는 나의 인생은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고 답했지요. 아름다움은 제가 영원히 추구해 나갈 삶의 목적이자 이유입니다.




Q. 사업가로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셨을 텐데, 결정의 순간 어떤 마음으로 임하셨나요?


저 또한 태평양을 일궈나가면서 왜 두렵지 않고 걱정이 없었겠습니까. 수많은 직원과 함께 회사를 이끌고 갈 때 전 고작 36세였어요. 지금으로 치면 아모레퍼시픽 과장 혹은 차장급이었겠지요. 태평양그룹을 지금과 같이 키우기까지 수많은 선택 앞에서 흔들림도 있었어요. 하지만 직원들을 비롯해 저 자신을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담하게 선택하고 한번 결심한 길이라면 불안해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고객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거짓부렁 하지 말고 성실한 자세로 각자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우리는 한 단계 도약해 있을 겁니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Q.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 아름다움을 전하고, ‘뉴뷰티’를 실천하고 만들어가는 구성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모레퍼시픽은 단순히 화장품을 파는 회사가 아닌, 아름다움의 본질에 집중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기업이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온 풍부한 경험과 기술력을 가진 우리만이 전할 수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뉴 뷰티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로서 자긍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꿈꿨던 것보다 더욱 크고 높은 꿈을 펼치며 세계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있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제공
에디터 안동선, 이정미
영상 이현준, 백상범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전체 인터뷰, 영상, 원고에 대한 저작권은 뉴스스퀘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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