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토양의 미생물과 녹차 떼루아(Terroir) - AMORE STORIES
#전문가칼럼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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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토양의 미생물과 녹차 떼루아(Terroir)



강호정(姜鎬玎) 교수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주요 경력
  • 2007 - 현재 연세대학교 교수
    2013 - 2014 미국 Princeton University 방문교수
    2001 - 2007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조교수, 부교수
    1999 - 2001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박사후 연구원

  • 학력
  • 1986 - 1990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이학사
    1993 - 1995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1995 - 1999 영국 University of Wales, Bangor, Ph.D.

  • 대표 저서
  • 2020 다양성을 엮다, 이음출판사
    2012 와인에 담긴 과학, 사이언스북스




녹차도 농산물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녹차가 우리 몸에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신토불이라는 단어는 불교 경전에서 유래한 개념인데, 일본인들을 통해 자기 지역에서 생산된 전통적인 농산물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 건강에 제일 좋다는 생각으로 변경 발전된 용어다.

이런 생각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전 세계 곳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개념이기도 하다. 특히 와인과 같은 고가의 상품을 만들어 내는 포도 생산과 관련해서 프랑스 사람들은 ‘떼루아(Terroir)’라는 용어를 강조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무리 똑같은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어서 잘 키운다 한들 프랑스의 고유한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 개념은 이후 커피나 담배, 초콜릿과 같은 기호 식품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차밭에도 이런 떼루아가 존재하는 것일까? 차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이러한 떼루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농작물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요소들—햇빛, 강수량, 바람, 흙의 영양분 등—은 당연히 차의 떼루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각 지역마다 차를 키우는 방법도 다를 수 있고, 찻잎을 덖는 법이나 시설도 각기 다르다. 이것도 떼루아의 또 다른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이 떼루아의 모든 것일까? 아직도 과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토양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구성과 활동도이다. 땅 속 흙을 파보면 지렁이나 작은 곤충들을 볼 수도 있지만, 사실 흙 속 생물의 주인공은 바로 세균, 곰팡이와 같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들이다. 식물 뿌리 부근 흙 1g 속에는 100억마리 이상의 세균이 살고 있다. 이들은 토양 속의 커다란 물질들을 분해해서 식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 물질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식물의 생장에 도움이 되는 토양 입자를 만들어 낸다. 또한 식물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호르몬이나 비타민과 같은 물질을 분비해서 작물이 잘 자라도록 돕기도 한다.

따라서 녹차의 떼루아를 이해하려면 토양 속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지만,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을 연구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전에는 흙에서 분리한 용약을 미생물들이 자라기 좋은 배지라고 하는 물질을 뿌려주고, 이들이 번식해서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큰 군체를 만든 후에야 분리해서 연구가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배양 방식 외에도 바로 토양에서 미생물에 들어 있는 DNA를 모두 뽑아낸 후 이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무슨 종류의 미생물이 있는지를 한꺼번에 알아낼 수 있는 방법들도 개발되었다. 이런 방법을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SG, Next Generation Sequencing)’이라 부른다.





필자는 이런 방법을 활용해 제주도에 있는 세 곳 차밭 토양의 미생물 군집을 분석해 보았다. 과연 차밭별로 독특한 미생물 구성이 존재하는지, 이들은 토양의 특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또 이것들이 녹차의 품질과 연관되어 있는지 등이 궁금했다. 흥미롭게도 세 차밭은 고유의 세균 군집들을 가지고 있었고, 계절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곰팡이의 경우에는 차밭별 차이 대신 봄, 여름, 가을마다 큰 계절적인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곰팡이의 다양성이 녹차 품질을 결정짓는 찻잎의 화학적 성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차밭의 토양에서 뜻밖에도 유산균의 한 유형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직도 연구의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차밭마다 고유한 미생물의 조성이 존재하고 이들이 찻잎의 품질과도 연관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발견하게 된 것은 큰 성과다. 우리 땅에서 나는 녹차가 우리 몸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사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본 칼럼은 매일경제 ‘강호정의 차의 테루아르와 과학’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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