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해외 선진국을 돌아보며 발달상을 살피고 싶다.
새로운 견문이 나를 영글게 하고, 꿈을 더 크고 또렷하게 드러내 줄 것이다.
일본과 홍콩을 거쳐 프랑스와 인근 유럽 국가들까지 돌아본다니,
그야말고 꿈의 여정 아닌가."
1960년 7월, 서른여섯의 장원은 제휴사의 유럽 초청으로 마음에 잔물결이 이는 것을 느꼈다. 40일간 펼쳐질 여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물보라가 이는 것이 퍽 살갑고 반갑다. 그러나 고민도 없이 훌쩍 비행기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1960년이라 함은 3.15 부정선거에 이어 4.19 혁명이 일어나는 등 국가 정세가 혼란스럽고 뒤숭숭한 시절이었다. 미세한 파열이 경제를 흔들리게 한다면 태평양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이었고, 이런 시점에 자신의 공백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장원은 담대하게 마음먹기에 이른다. 이제는 자신의 부재가 문제 되지 않으리란 곧은 믿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코티분을 생산하는 코티 본사가 있는 곳으로의 여정인 만큼 장원에겐 설레는 모험에 다름 아니었다. 장원의 마음에 넘실거리던 잔물결은 여권을 쥐고 공항에 이르는 순간 물보라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태평양은 국산 제품 사이에서는 과연 훌륭한 제품이다.
그러나 안주할 수 없다. 끓어오른 변질품이 나오고 있지 않느냐.
그 해답은 기술 확보에 있고, 바다 건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장원이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이젠 국내에서 경쟁 상대를 찾는 것을 넘어 지금의 태평양을 뛰어넘을 기술을 살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이미 국내에서는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는 태평양이었지만 장원은 한시도 안일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제나 시장을 파악하고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숱한 성공 사이에서 몇 안 되는 불량을 살피는 뾰족함은 더 나은 기술을 열망하게 했고, 굳은 결심이 되어 그를 비행기에 오르게 했다. 일본과 홍콩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 장원은 널찍한 규모의 비행장을 보며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뛰는 것을 선명히 느꼈다. 파리에 머무는 보름 동안 함께한 코티사 중역의 미소와 정중함에 감명받길 수 차례, 센 강변에 자리 잡은 코티사에 도착한 날 그는 다시 한번 큰 숨을 들이켜야 했다. 1만여 평이 넘는 부지에 우뚝 선 코티사 건물은 사무실만으로도 한국의 어지간한 공장만큼 널찍했고, 조용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가 감도는 한편 위세를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장원은 압도당함과 동시에 마음에 일렁이는 힘찬 파도를 느꼈다.
"나의 심경은 도저히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직 나와 같은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 자리에 와서 눈으로 직접 이러한 것들을 보아야만
지금의 나의 기분을 알아줄 수 있을 것이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장원 안에 있던 꿈은 한층 선명해졌다. 막연하던 소망이 현실성을 띠며 그의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알알이 형태를 갖춰 나간 건 자명한 사실이다. 국내에만 있었더라면 꿈으로 그쳤을 장면이 청사진이 되어 구체적으로 제 모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친 장원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완만한 산기슭에 옹기종기 자리한 마을 그라스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그는 생각지 못한 또 다른 별세계를 만난다. 단지 이국적인 장면에 마음을 빼앗긴 것만이 아니었다. 얇은 막을 씌워놓은 듯 말갛고 투명한 풍경, 실바람에 밀려오는 달콤한 공기, 아름다움과 풍요가 한데 섞인 자연…. 눈앞에 펼쳐진 다채로운 꽃농장의 고아한 정취에 매료된 것이었다. 눈부신 색상과 향기로 어룽지며 긴긴 여운을 남긴 풍경, 이 꽃농장은 세계적인 향수의 고장 그라스가 꾸린 꽃 하나만을 위한 농장이었다. 자연과 인간, 문화와 노동의 조화가 가능한 또 다른 자연은 그에게 상상해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농사와 식물을 재배하는 노동이 경제, 문화, 더불어 아름다움까지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데 감복한 그는 형형색색 꽃구름을 헤아리면서 태평양 또한 이러한 자연을 꼭 지니고 싶다고 열망한다. 그의 마음에 격랑 하던 파도에 한 줄기 햇살이 비쳤고, 그의 마음에도 작고 단단한 씨앗 하나가 움트기 시작했다. 장원은 마음으로 조용히 읊조린다. 단단하고 강한 음성으로, 끈끈하고 담대한 목소리로. “태평양도 식물과 만나고 싶다. 이건 분명히 매력적인 일이다.”
Editor’s Epilogue
나의 꿈에게 보내는 용기
꿈의 형태는 다채롭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어떤 것일 수도 있고, 한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펼쳐진 것일 수도 있다. 때때로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며, 한 번도 마음 두지 않았던 곳에서 왈칵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장원은 서른여섯 나이에 세계적인 향수의 마을 남프랑스 그라스에서 꽃구름을 만난 뒤 태평양도 식물과 만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꿈을 꾸는 데에 나이와 시대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의도치 않은 순간 불쑥 꿈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극한의 업무 스트레스 끝에서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에 치인 순간일 수도 있고, 상사나 선배에게 내가 한 일을 인정받았을 때일 수도 있고, 그저 길을 걷던 도중일 수도 있을 테다. 어떤 꿈은 너무 허황돼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두루뭉술한 꿈이든, 그 모양과 방향이 확실한 꿈이든 우리에게 어떤 위안과 용기를 주는 것임은 명백하다. 장원이 영면한 지 16년이 흐른 2019년 봄, 마침내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 개관했다. 장원이 품은 푸릇한 세상은 그가 없이도 생명력을 지닌 채 이 땅에 싹을 틔웠다. 당신이 꾸고 있는 꿈에 나만이 줄 수 있는 굳건한 용기를 보내보자. 설령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지 아니한가.
글·사진 이주연(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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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개정판 수류산방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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