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을 넘어 자신의 시대를 살아라. 2편 - AMORE STORIES
#여성의 날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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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넘어 자신의 시대를 살아라. 2편



작가 소개 이지은

30년 째 프랑스에 거주하며 장식미술과 오브제 아트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이자 장식미술학자. 저서로는 <귀족의 시대>, <부르주아의 시대 >,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가 있다.





성별을 넘어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당신을 위하여.

1927년에서 시작한 샤를로트 페리앙의 행보를 지난 1편에 이어 2편에서 좀 더 따라가보자. 그녀의 삶은 단 한 편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지붕 아래의 바’로 건축계의 시선을 모았던 샤를로트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의 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서 평생 그녀가 추구했던 화두를 만나게 된다.






누구나 행복한 건축을 누려야 한다.


“인간과 시대와 관련 있는 건축은 그 자체만으로도 생을 영위합니다. 건축은 사람을 불행하게도 행복하게도 만들 수 있어요.” 1950년 <테크닉과 건축>지와의 인터뷰에서 페리앙은 이렇게 말했다.


1. 정교한 철제 프레임과 멋스러운 가죽의 LC1 암체어
2. 의자 전체를 받쳐주는 둥근 튜브의 긴 의자 B036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Charlotte Perriand, Le Corbusier, Pierre Jeanneret - Interior equipment of a home - Salon d'Automne 1929" Reconstitution 2019 with the participation of Cassina & Sice Previt as well as the scientific council of Arthur Ruegg - View of the installation,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October 2 2019 - February 24, 2020. Artists credits: © F.L.C. / Adagp, Paris, 2019 © PJ / Adagp, Paris, 2019 © Charlotte Perriand / Adagp, Paris, 2019 Photo credit: © Fondation Louis Vuitton / David Bordes

“여기는 쿠션에 수를 놓는 곳이 아니다”라는 매운 일갈과 함께 샤를로트 페리앙을 받아들였던 르 코르뷔지에 건축 에이전시에서 그녀는 피에르 잔느레와 준조 사카쿠라 같은 평생 함께할 동료를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자유롭고도 아름다운 교류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 B306으로 알려진 안락의자다. 당시 빌라 라 로슈와 빌라 처치를 설계하고 있었던 르 코르뷔지에는 토네트 사에서 생산된 록킹 체어를 비롯한 몇몇 예시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창작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B306 외에도 샤를로트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의 디자인으로 알려진 LC8, LC7, LC1 등의 디자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사진)B306에 앉아있는 샤를로트 페리앙(1928-29)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도록



오늘날 비트라 디자인뮤지엄, 메르로폴리탄 뮤지엄 등에 소장되어 있는 B306을 비롯해 디자인 경매에서 상종가를 기록하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품들 덕택에 그 의미가 가려져 있지만, 샤를로트 페리앙이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모두를 위한 신건축’이었다. 필요와 형태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공간, 누구나 시대를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가구, 옴므 누보에게 필요한 누보 에스프리, 새로운 건축과 장식에 대한 생각 은 샤를로트 페리앙의 향후 작품과 행보를 결정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오리지널 작품들은 그래서 한 개인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닌, 기숙사나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 같은 집합 건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1.다리가 세 개 달린 타부레 베르제 스툴
2.일본의 오리가미 전통에서 차용한 디자인의 옴브라 도쿄 의자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Charlotte Perriand - Central core of the exhibition Proposal of a synthesis of the arts, Paris 1955. Le Corbusier, Fernand Léger, Charlotte Perriand, Tokyo 1955 » - View of the installation,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October 2 2019 - February 24, 2020. Artist credit: © Adagp, Paris, 2019 ; © F.L.C. / Adagp, Paris, 2019 Photo credit: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c Domage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도록



모두들 하나쯤 가지고 싶어하는 타부레 베르제(Tabouret Berger) 스툴은 1967년 사부아 지방의 레자크 스키장 건축에서 탄생했고, 샤를로트 페리앙의 주방 가구는 1947년 르 코르뷔지에가 마르세유에 지은 시테 라디유즈(Cité Radieuse)에서 처음 선보였다. 샤를로트 페르앙의 팬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하는 책장은 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건축에서 착상 을 시작했다. 알루미늄으로 되어 관리가 쉽고 사용이 편한 색색의 문짝과 유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인 전나무를 사용한 책장은 가벽처럼 쓸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는데, 좁은 스튜디오 공간을 효과적으로 나눠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생들의 생활에 최적화된 형태 로 만들어졌다.




늘 주제는 사람이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도록



샤를로트 페리앙은 이례적으로 건축과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을 넘어 편견과 전쟁에 맞서는 목소리를 주저하지 않고 표명했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1929년 페리앙은 여유로운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디자인과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했던 기존의 장식미술협회에 반기를 들고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피에르 샤로(Pierre Chareau), 르네 헤릅스트(René Herbst), 말레 스테벵스와 함께 모던 장식미술 아티스트협회(Union des artistes modernes, UAM)를 창설했다. 이들은 기존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동시대를 반영하면서 현대인의 삶에 걸맞은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표방 했다. 또한 페리앙은 시냐크, 앙드레 말로 등과 함께 나치즘에 저항하는 문학과 예술 단체였던 AEAR의 중심 멤버로 평생 활동했다. 1930년대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친 스페인 내전에서 그녀는 프랑코의 독재에 맞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공화주의를 옹호했다. 그야말로 당당한 개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거다.




(좌)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스키리조트 마크(ARC)1969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도록



세계2차대전 이후 샤를로트 페리앙은 금속과 현대적인 테크닉 대신 나무와 돌 등 자연적인 소재와 일본이나 인도차이나 등에서 사용하는 전통적인 테크닉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석을 모아 돌의 융기한 모습을 스케치했고, 고래나 물고기의 형태, 나무의 생장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연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주제는 늘 사람이었지 오브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던 그녀는 자연 속의 사람, 비어 있는 공간에서의 하모니를 구현하는 데 말년을 보냈다.

샤를로트 페리앙이 말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부아 지방의 메리벨 샬레는 새벽이면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깔리는 안개와 산을 비추는 햇살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Visitors at « Charlotte Perriand Inventing a New World(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 Octobre 2019 - 24 Février 2020. Artist credit: © Adagp, Paris, 2019. Photo credit: © Fondation Louis Vuitton / Felix Cornu

돌과 나무로 간략하게 지은 주택 안에는 농가에서 쓸 법한 메리벨 안락의자와 바깥 경치를 가리지 않고 지평선을 잘 관찰할 수 있어 그녀가 유난히 좋아했던 메리벨 베르제 스툴을 놓았을 뿐 단출하기 그지없다. 이 가구들은 접착제나 못을 쓰지 않고 전통방식 그대로 귀퉁이를 깎아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곳에서 샤를로트 페리앙은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썼다고 한다.

“소비하기 위해 일하고, 기계를 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이클, 진정한 생의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잊어버리게 하는 일정의 경제적 노예 상태가 우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람이다. 우리의 사회와 경제, 철학을 다시 한 번 재고해봐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화합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소비주의 문화와 세계화가 대중적으로 물결치던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가면서 이 디자인의 대가는 오늘날 우리 역시 가끔 던져보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는 데 골몰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가 찾은 답은 “산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살아나게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자신 안의 숨겨진 것을 푸릇푸릇하게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건축가. 지금 젊음과 청춘의 한가운데 서 있는 당신이라면 그녀의 목소리를 꼭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이 닥칠 때 중요한 선택이 망설여진다면 샤를로트 페리앙의 말대로 하는 건 어떨까? 내 안에 있는 나를 숨 쉬게 하는 것, 그리하여 나를 깨어나게 하는 선택, 이것이 그녀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일 테다.

(사진설명) 샤를로트 페리앙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2019년 10월 2일 - 2020년 2월 24일까지 개최된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전시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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