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미학 : 속도와 효율의 시대, 느림이 브랜드가 되는 순간 - AMOREPACIFIC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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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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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의 미학 : 속도와 효율의 시대, 느림이 브랜드가 되는 순간

 

유주영 라네즈BD팀

Editor's note


세상이 너무 빠를 때, 미는 우리를 잠시 붙잡는다
“효율은 세상을 움직였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히 사람을 움직인다.”
우리는 오늘 시간보다 빠르게 살아간다. 핸드폰 알림은 우리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고, 스와이프 한 번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AI가 제안하는 ‘즉각적 솔루션’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업무와 소비, 관계까지도 ‘즉시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모든 것은 즉시 반응하고, 모든 감정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빠름이 우리를 만족시키는 동안, 어딘가에서는 감정의 밀도가 희미해진다. 스쳐 지나간 대화, 잊혀진 향, 이름 없는 여운들은 점차 옅어진다.

하지만 깊숙히 스며드는 아름다움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 어스름한 금빛 햇살의 오후, 꽃이 피어나는 시간, 따뜻한 녹차의 향이 퍼지는 순간, 빛이 잦아드는 저녁의 결. 그것들은 언제나 느리게 다가왔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삶을 ‘거주함(Dasein: 거기에를 뜻하는 ‘Da” + 존재를 뜻하는 ‘Sein’의 합성어)’ 이라 부르며, 살아간다는 것은 곧 머무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느림의 태도’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사물의 결이 드러나고 마음의 빛이 살아나는 듯하다.

느림은 단순히 속도의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농도이며 존재의 깊이다. K-Beauty가 추구해온 Holistic Beauty는 피부의 표면이 아닌 ‘삶 전체의 조화’이며, 그 뿌리에는 바로 ‘머무름의 미학’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시간을 품은 감정의 또 다른 이름인 것 같다.

이번 칼럼은 ‘속도의 시대일수록, 쉼의 결을 디자인하는 브랜드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1 느림은 새로운 럭셔리, 시간의 희소성을 디자인하다

 

The Most Costly Outlay is Time.
가장 비싼 지출은 시간이다.

- Antiphon the Sophist (411 B.C)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안티폰(Antiphon, 480~411 B.C.)은 시간이 가장 비싼 지출이라고 이야기 했다.

한때 럭셔리는 금속과 보석, 한정판 수량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지금 세계에서 가장 귀한 것은 시간의 여유 같다. 빠름은 편리함을 주고 효율을 낳지만, 느림은 희소성을 낳는다. ‘시간의 여유’만큼 희소한 자산이 있을까? 진정한 럭셔리는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현대를 ‘가속의 사회’라 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현재를 잃어간다”고 말한다. 정보는 즉시 도착하지만, 경험은 우리보다 먼저 사라진다. 이때 느림은 퇴보가 아니라 현재를 되찾는 윤리가 된다.

 

 

출처: Hermés 유튜브

 

 

Hermés는 장인들의 느린 제작 과정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그 과정에는 단순한 생산이 아니라 ‘신뢰의 시간’이 담긴다. 진짜 럭셔리는 빠른 것이 아니라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출처: Pinterest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또 다른 예시로는 Aesop의 브랜드 지향점이 그러하고, 일본의 전통 스킨케어가 그러하다. 그들은 즉각적 효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흡수되는 텍스쳐, 묵직한 향, 그리고 시적인 언어로 소비자에게 말한다. 그들의 브랜딩에는 명령이 없다. 오히려 여백이 있다. 그 여백이 사람을 쉼으로 이끌고, 브랜드로 회귀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의 질감을 디자인한다.

이처럼 ‘느림’은 럭셔리의 새로운 언어가 된 듯하다. 속도의 반대가 아니라, 깊이의 전략으로 작동한다. 빠름이 효율을 낳는다면, 느림은 신뢰를 낳는다.

“느림은 효율을 잃지만, 감정의 신뢰를 얻는다.”

 

 

2 느림의 감각, 리추얼과 여백이 만들어내는 미의 리듬

 

빠른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천천히 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자신을 돌보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 그 짧은 순간이 삶 전체의 리듬을 바꾼다.

심리학자 노튼과 지노의 연구에 따르면, 작은 리추얼(의식화된 행동)은 사람에게 안정감과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즉, 천천히 반복되는 행위는 마음의 구조를 단단히 세운다.

“기술은 피부의 시간을 단축시키지만, 리추얼은 마음의 시간을 확장시킨다”

오늘날의 뷰티는 단순히 피부를 관리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하루의 리듬을 되찾는 ‘감각의 의식(ritual)’이다.

 

 

 

 

한 병의 크림을 열고 손끝으로 천천히 바르는 순간, 시간은 ‘나만의 속도’로 돌아오는 듯하다. 이 느린 행위가 쌓여 ‘정체성의 리듬’을 만든다. 스킨케어 루틴, 향을 태우는 일, 차를 내리는 순간, 그 모든 느린 행동이 하나의 ‘감정적 리듬’을 만드는 것이다. 손끝이 기억하는 감촉, 향기의 잔상, 온도의 여운. 이것이 곧 느림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회복의 결이다.

 

 

 

 

이 시대의 Holistic Beauty는 외적인 완성보다 ‘감각의 회복’을 더 중시하는 듯하다. 피부의 결, 마음의 결, 빛의 결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 그 리듬은 결코 빠르지 않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호흡의 속도로 자란다. ‘빛’과 ‘결’이 감각의 언어였다면, 이제 ‘시간’이 새로운 층위로 등장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속에서도 시간의 결을 존중하는 브랜드는 오래 남는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지연된 감동’이기 때문이다.

 

 

3 느림의 언어, 빛 그리고 침묵의 디자인

 

There was always more in the world than men could see, walked they ever so slowly; they will see it no better for going fast. The really precious things are thought and sight, not pace.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 Alain de Botton “The Art of Travel”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영국의 미술 비평가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이동한 거리의 양이 아닌 인식의 질이다.

현대사회의 마케팅 언어 또한 빠르게 흘러온 것 같다. “지금 바로!”, “즉시 효과!”, “단 3일 만에!”와 같은 문장들은 소비자에게 피로를 남겨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런 말의 속도에 길들여져 왔다. 이제 소비자들은 ‘존중받는 시간’을 원한다. “조용히 스며드는 시간의 변화”는 우리의 마음에 공간을 남긴다. 그 여백이 곧 아름다움의 호흡이다.

 

 

출처: ROWSE Beauty 인스타그램

 

 

시각적 언어도 같다. 빠른 컷과 강렬한 대비는 순간을 붙잡지만, 롱테이크로 조리개를 열어둔 빛과 그림자는 기억의 깊이를 만든다. 빛이 천천히 이동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시간’을 본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은 늘 조금 느려 보인다. 그 안에서는 여백, 숨, 침묵이 느껴진다.

침묵은 결코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쌓이는 자리다. 빠름의 언어가 자극을 남긴다면, 느림의 언어는 잔향을 남긴다.

 

 

4 느림의 윤리, 정보의 시대에 감정의 속도로 살아가기


 

기술은 우리의 시간을 단축시켰지만, 감정의 속도는 옛날 그대로다.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느린 언어로 이해되고, 느린 눈빛으로 기억된다.

K-Beauty의 진화 역시 이 방향을 향해 있는 듯하다. 즉각적인 효과를 넘어 시간이 쌓일수록 빛나는 피부, 감정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미. 이는 단순한 마케팅적 방향성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격적 존중으로 보인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사회적 가속(Social Acceleration)현상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Run, run always faster, not to reach an objective, but to maintain the status quo, to simply remain in the same place.
- Hartmut Rosa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상 유지를 위해, 단순히 같은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끊임없이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의미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속도를 높여도 실질적인 발전이나 변화 없이 현재의 위치를 유지할 뿐인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느림은 단순한 삶의 속도의 문제를 넘어 감정의 회복, 인간성의 복원을 뜻한다. 빠름이 기능이라면, 느림은 존재다.

 

 

4 느림은 결국 깊이의 다른 이름

 

아름다움은 빠르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머무름의 결 속에서 피어난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효율적으로 바꾸었지만, 효율만으로는 마음을 설득할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장면들은 늘 느리다. 봄날의 길가에 핀 꽃 향기, 밤이 깊을 무렵 여러 겹으로 감싸던 안개와 그림자를 따라가던 햇빛의 궤적과 같이 진정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늘 느리게 다가왔다.

“속도는 정보를 남기지만, 느림은 감정을 남긴다.”

그래서 진짜 미는 언제나 늦게 온다. 느림은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누적되는 깊이의 전략이다. 그것은 마음이 시간을 다시 빚어내는 기술이자, 세상이 너무 빠를 때에도 우리를 조용히 붙잡아주는 결이다.

그렇게 우리가 잠시 숨을 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멈춰 있을 때, 아름다움은 어느새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앉는다.

 

 

Epilogue


느림이 남긴 자리


시간이 지나야만 피어나는 빛이 있다.
느림은 그 빛이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지만,
나는 그 안에서 조금씩 느려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멈춰 선 자리에서 바람의 결을 듣고,
늦게 핀 꽃 하나를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는 뜻 같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늘 그런 식으로 나를 찾아왔다.
때론 서둘지 않는 것들로
때론 천천히 익어가는 것들로
때론 마음이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다가오는 것들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믿게 되었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의 호흡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호흡 한 숨이,
한 줌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언젠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임을.

 

* 참고 문헌
- Martin Heidegger, Building, Dwelling, Thinking (Harper & Row, 1971)
- 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1957)
- Hartmut Rosa, Social Acceleration : A New Theory of Modernit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 Norton, M.I & Gino, F. “ Rituals Enhance Consumpiton” (PNAS, 2013)
- Alain de Botton, The Art of Travel (Vintage, 2002)
- loannou, A.et al. “Mindfulness and Technostress in the Workplace,” Frontiers in Psychology (2023)

 

 

유주영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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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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