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생각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잃지 않는 법에 대하여 #4
글
나용주 R&I 센터 혁신경영센터
#INTRO
안녕하세요. R&I 혁신경영센터 나용주입니다. 평소에 ‘나’를 둘러싼 경험에서 생각을 확장하고 정리하며 글을 써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때로는 R&I 연구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평범한 직장 동료의 입장에서, 저만의 사유를 넘어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저의 글이 여러분께도 ‘나다움’과 그것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1 ‘내 것’을 지키는 게 익숙한 연구자였던 나
제품의 효능을 홍보하는 페이지에 ‘in vitro 효능에 한함’이라는 문구를 보신 적이 있나요?
(in vitro: 라틴어로 ‘유리 안에서’라는 뜻. 생체 밖의 인공적 환경에서 세포를 이용하거나 시험관 등에서 수행되는 실험)

출처: 제품 상세 페이지
in vitro 연구 사례: 피부 조직을 이용한 이미징 평가

출처: 제품 상세 페이지
작게 쓰인 in vitro 테스트 결과 문구
저는 지금 연구소의 포트폴리오와 프로젝트 운영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지만, 한때 그 문구의 내용을 증명하는 역할인 선행뷰티 연구소의 [클레임 실증 파트] 리더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과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시선에서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을 많이 봤습니다. 그건 누구나, 항상, ‘제가 할게요’라던가, ‘제 것을 쓰세요’였습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함께 팀(랩)이나 파트를 이루어 일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지만, 실험이라는 구체적 업무는 개인의 영역에 더 가깝습니다. 자기가 맡은 실험은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수해 내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입니다. 어쩌면 ‘따로 또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인 거죠.
연구와 실험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실험을 하려면 시약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약품이나 피부세포 같은 재료가 반드시 준비되어야 합니다. 공용 시약이라고 해서 함께 공유하는 성격의 것들도 있는데요. 보통은 자기 실험대에 놓고 쓰는 개인적인 준비물이 훨씬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학원생 시절에 겪은 다소 황당한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어떤 선배는 사람들이 자기 시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엉뚱한 표시를 해두기도 했습니다(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글자나 암호(?) 같은 것 말이죠). 즉, 실험에 쓰이는 준비물들은 ‘내 것’이라는 개념이 강합니다. 만들기 어렵거나 귀해서가 아니라 그냥 공유 자체가 낯선 느낌이랄까요.
세상만사 그렇듯 계획한 대로 실험이 진행되지 않을 때가 생깁니다. 가끔 실험 준비를 마치고 아침에 출근했더니 알 수 없는 이유로 세포가 오염되어 하루를 통째로 날리기도 합니다. 오염된 세포는 폐기해야 하고,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키운 세포도 어떤 경우엔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란 것을 받아서 실험에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요? 너른 마음으로 세포를 나눠 준 그/그녀에게 뭐라고 한 소리 할 수도 없는 걸요. 다른 사람의 실험을 대신 해주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험의 과정은 복잡하고 작은 스텝 하나만 꼬여도 최종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수 있으므로, 저는 ‘내 실험은 내 것’, ‘남의 실험은 남의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잘되든 못되든 나의 책임인 것이죠.
그런 의식 때문인지 실험에 쓰이는 재료(시약, 세포, 또는 물건)를 남들과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물건을 믿고 쓰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건 핑계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믿지 않아서라는 표현이 정직한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함께 일했던 파트 구성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 실험이 끝나면 다른 동료의 일을 기꺼이 도와주고, 자신이 키우던 세포를 언제든 나눠주며, 그걸 또 아무렇지 않게 받아서 실험을 하더군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세포를 키우다 보면 세포가 자라는 상황에 따라 가끔 주말에도 나와서 돌봐야 하는데요. 이때도 누가 한 명 출근해서 다른 사람의 세포를 전부 케어(잘 자라서 실험에 적합하도록)하곤 했습니다. 옆에서 보는 입장에선, ‘좋긴한데.. 대체 왜?’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2 신뢰를 넘어선 배려, 그리고 우리다움
기존에 존재했던 파트에 리더로 합류한 상황이다 보니, 저는 더더욱 이들의 ‘자연스러운 협력’이 궁금해졌습니다. 파트원들과 개별적인 미팅을 하면서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공동 운명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업무 특성이 한몫했던 겁니다. 제품 출시 일정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요구되는 결과물의 양과 질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구체적 납기일을 지키며 양질의 결과를 위해 수행하는 실험들은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파트 전체의 과제와 다름없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하게 달성해야 합니다. 실험과 연구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구성원들은 평소에는 실제로 그렇게 잘 처리하고 있고요. 그러나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예를 들면 급하게 결과가 필요한 실험이 잘 안되었거나, 세포가 갑자기 필요할 때 등)이 발생할 땐, 누구의 실험인지 상관없이 힘을 합할 수밖에요. 그때는 파트원들이 서로 도움을 요청하고, 빌려줄 손이 가능하다면 기꺼이 손을 빌려주었습니다. 이처럼 ‘함께 해결하는’ 체계가 자연스럽게 운영되는 모습이 당연해 보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대화법, 하야시 켄타로 저)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부정하지 않기만 해도 칭찬, 긍정하거나 혼내는 것보다 몇 배나 좋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남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일단 부정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단순히 내 생각은 다르다’고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견을 뭉개거나 무시하는 경우 말이죠. 그러나 제가 지켜본 동료들의 태도는 단지 상대방을 부정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남의 연구를 대신하는 건 상상도 못 했지만, 그들의 태도를 보며 ‘내 연구만 지키면 된다’는 기준이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신뢰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글을 쓰며 정리하다 보니 단순한 믿음을 넘어선 배려가 없으면 안 되는 행위란 결론에 이릅니다. 주말 출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세포를 케어하기 위해 단지 몇 시간 나와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자기 것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한 사람이 출근해서 다른 동료들의 세포도 돌보는 행위는, 사소해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끈끈한 마음, 동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으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를 챙기며 믿음으로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나누는 동료들의 모습은, 실험이란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편견을 깨끗하게 날려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지녔던 저의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어요. 그들과 함께 3년의 시간을 보내며 저는 ‘동료로서 일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나답게 일하는 법’보다 더 강력한 건 ‘우리답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라는 배움 말입니다.

우리다움을 일깨워 준 동료들과 연구소 정원에서 즐거운 피크닉 시간
지금은 다른 리더들의 프로젝트 운영을 도와주면서 그때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프로젝트는 더더욱 혼자 할 수 없는 규모와 운영의 짜임새가 필요한 일인데요. 그저 내가 맡은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을 함께 완성해가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힘들지만) 더 큰 성과와 성장을 이뤄내는 경우를 목격할 때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다움’을 만들어가는 순간들을 찾고 있습니다.
#OUTRO
4월부터 시작했던 칼럼인데요. 네 편의 글을 끝내고 창밖을 바라보니 연구소의 정원엔 불그스름하게 물든 나뭇잎들이 가득합니다. 좋아하는 계절이 와서 반가우면서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느덧 제가 쓰게 될 칼럼도 이제 하나 남았네요. 마지막은 ‘나다움을 완성해 주는 나만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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