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철석같이 믿었던 상식,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 AMOREPACIFIC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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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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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철석같이 믿었던 상식,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ESG 이모저모 #1

조현희 지속가능경영센터

 

Editors’ Note


고백합니다. 저희, ESG 덕후입니다. 회의실에서 탄소발자국 얘기에 눈이 반짝이고,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읽다가 무릎을 탁 치는 사람들입니다. 주변에서 "그래서 그게 뭔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아예 글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화장품의 생로병사부터 순록의 생존기까지, 예상을 살짝 빗나가는 ESG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여러분도 덕후가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요즘 ESG 이모저모」, 격월로 찾아갑니다. 입덕을 환영합니다!

 

 

#INTRO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Q. 다음 중 환경에 더 나쁜 것은 무엇일까요?
A) 유리병 화장품  B) 플라스틱 용기 화장품
A) 국내 생산 원료  B) 아마존에서 수입한 원료
A) 천연·유기농 제품  B) 합성 원료로 만든 제품
A) 대용량 화장품 하나  B) 소용량 화장품 여러 개

고르셨나요?
사실 이 질문들에는 명확한 정답이 없습니다. 더 정확히는, 지금 고르신 답이 틀렸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억울하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합리적으로 내리신 선택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친환경 상식들이, LCA 앞에서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그 불편하고, 그래서 더 흥미로운 진실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잠깐, LCA가 뭐냐고요? LCA는 Life Cycle Assessment의 약자로, 한글로는 '전과정평가'입니다. 쉽게 말해 어떤 제품이 태어나서 사라질 때까지 – 원료 채취, 제조, 운반, 사용, 폐기 – 전체 여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측정하는 방법입니다. 화장품 한 개의 이력서를 환경 관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LCA의 눈으로 우리의 친환경 상식들을 하나씩 들여다볼까요?

 

 

[Case 1] 유리병은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이다. 사실일까?

 

 

마트에서 같은 제품이 유리병과 플라스틱 용기에 각각 담겨 있다면, 당신은 어떤 걸 고르시나요?
대부분의 사람이 유리를 집어 듭니다. 왠지 더 고급스럽고, 플라스틱보단 죄책감도 덜 생기고, 몸에도 덜 해로울 것 같은 유리가 더 옳은 선택 같습니다.
그런데 유리가 우리 손에 쥐어지기 전의 과정을 따라가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유리를 만들려면 모래와 석회석을 약 1,500~1,700°C까지 가열해야 합니다. 가정용 오븐의 최고 온도가 보통 250°C라는 걸 생각하면, 그 6~7배에 달하는 열이 필요한 셈입니다. 거기다 유리는 플라스틱보다 일반적으로 수 배 이상 무겁습니다. 같은 내용물을 담은 용기를 전국 매장으로 실어 나를 때, 그 무게 차이는 훨씬 더 많은 연료 소비로 이어집니다.
탄소발자국만 놓고 비교하면, 제조 단계에서 유리가 플라스틱보다 최대 3배 높은 탄소를 배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리를 쓰면 안 된다는 걸까요?
그게 아닙니다. 유리의 강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재사용되느냐입니다. 같은 용기를 수십 번 리필해서 쓴다면, 유리는 분명히 유리합니다. 하지만 한 번 쓰고 버리는 유리병은, 좋은 마음과 달리 환경에 더 큰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재"만 볼 때, LCA는 "전체 여정"을 봅니다.

 

 

[Case 2] 종이 포장 = 착한 포장?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요즘 플라스틱을 종이로 교체하는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소비자 반응도 좋고, 방향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LCA로 번역해보면 예상외의 수치를 볼 수 있습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야 하고, 펄프로 만드는 공정에 물과 화학물질이 대량으로 사용됩니다. 같은 양의 내용물을 보호하려면 플라스틱보다 더 많은 양의 종이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담수 사용량, 토지 이용 측면에서는 종이가 의외로 만만치 않은 환경영향을 보이기도 하고, 산림 벌채가 수반될 경우 생물다양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편 플라스틱에는 종이가 가지지 않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 해양 오염, 미세플라스틱, 땅에 묻어도 수백 년간 썩지 않는다는 것.
결국 종이에는 종이의 숙제가, 플라스틱에는 플라스틱의 숙제가 있습니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정답이 달라집니다. 세상에 모든 환경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완벽한 소재는 없습니다.

 

 

[Case 3] 고체 샴푸 vs 액체 샴푸: 바(Bar) 형태가 항상 더 좋을까?

 

 

고체 샴푸바는 플라스틱 용기가 없고, 가볍고, 농축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완벽한 친환경 제품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포장재와 운반 단계에서는 샴푸바의 탄소발자국이 액체 샴푸보다 상당히 낮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LCA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고객이 욕실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그 순간까지 따라가, 새로운 환경영향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고객의 어떤 행동이 이 완벽하게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제품의 환경영향을 높일까요? 첫째, 고체 샴푸는 제조 과정이 더 복잡하고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경우가 있습니다. 고체 형태를 만들기 위한 계면활성제 합성 공정이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비자 사용 단계에서 고체 샴푸는 액체보다 거품을 내기 위해 더 많이 비비는 경향이 있어 1회 사용량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셋째, 고체 샴푸는 습한 욕실에서 빨리 녹아 낭비율이 높다는 소비자 사용 데이터도 있습니다.
샴푸바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포장재 절감 효과는 분명합니다. 다만 "무조건 고체가 낫다"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어떤 원료를 쓰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함께 확인해 봐야 합니다.
친환경 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디테일이 필요합니다.

 

 

[Case 4] “천연”, “유기농” = 환경에 좋다?

 

 

화장품 매대에서 "자연 유래 98%", "유기농 원료 사용", "천연 성분"과 같은 문구를 보면 왠지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LCA로 이 원료들을 실제로 평가해보면 생각보다 복잡한 결과가 나옵니다.
라벤더 에센셜 오일 1kg을 얻으려면 라벤더 꽃을 수백 kg 수확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농지와 물이 많이 사용되고, 수확과 증류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팜유의 경우에는 팜 농장 확대로 인한 열대우림 파괴로 LCA의 토지 이용 항목에서 매우 높은 환경영향 점수를 받습니다.
반면 일부 합성 원료는 훨씬 적은 에너지와 물로 동일한 효능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합성 비타민C는 천연 원료에서 추출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공정으로 낮은 환경영향을 보입니다.
그럼 유기농 원료는 어떨까요? 유기농 농법은 합성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으니 토양과 수질에는 좋습니다. 그런데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일반 농법보다 약 20-25% 적습니다. 같은 양의 원료를 얻으려면 더 넓은 땅과 더 많은 물이 필요하고, 이는 토지 이용과 물 소비 항목의 환경영향 점수를 높입니다.
물론 생태계 순환 기여, 소농 지원과 같이 LCA의 숫자로 번역할 수 없는 사회, 경제적 가치도 있습니다. LCA가 "합성이 무조건 낫다"거나 "유기농을 쓰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LCA가 말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천연", "유기농"이라는 단어 하나가 환경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Case 5] 국산이 수입산보다 탄소가 적다? 배가 트럭보다 낫습니다!

 

 

"국산 원료", "로컬 소싱",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었으니 운반 시 발생하는 탄소가 적을 것 같습니다. 직관적으로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운반 수단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화물선은 단위 무게당 탄소배출이 트럭의 수십 분의 일 수준에 불과합니다. 배는 엄청난 양을 한 번에 싣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하는 수입 원료가, 온실 가열로 재배된 국산 원료보다 발생하는 탄소가 오히려 적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국내 원료에는 지역사회 경제 지원, 원료의 신선도, 공급망 안정성 같은 다른 가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탄소만 놓고 본다면,
“어디서 왔느냐”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Case 6] 대용량이 소용량보다 환경영향이 더 적다 – 다 쓴다면.

 

 

소용량 제품은 동일한 양의 내용물을 사용하기 위해 더 많은 포장재를 쓰고, 더 자주 구매해야 하고, 더 자주 배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용량이 무조건 환경에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는 맞습니다. 실제로 포장재 사용량 대비 내용물의 비율을 높이는 것은 환경영향을 낮추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LCA에서도 대용량 제품은 포장재 대비 내용물 비율이 높아 유리하게 평가됩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돼야 합니다. 지금 화장대에, 욕실 선반에 반쯤 남은 채 묵혀둔 제품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쓰다 만 크림, 유통기한 지난 에센스, 맞지 않아서 방치된 파운데이션. 내용물이 남은 채 버려지면,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모든 환경영향이 고스란히 낭비가 됩니다. 1g당 환경영향이 아무리 낮아도, 절반밖에 못 쓰고 버린다면 실질적인 영향은 두 배가 되는 셈입니다. 대용량이 유리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끝까지 다 쓴다는 전제가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소용량 제품이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고 낭비를 줄인다면, 대용량보다 어쩌면 나은 환경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LCA로 확인 해봐야겠죠?

 

 

#OUTRO

 

머리가 많이 복잡해지셨나요?
그렇다면 이 칼럼을 제대로 읽으신 겁니다!
"그럼 뭐가 맞는 거야? 유리야 플라스틱이야? 천연이야 합성이야? 제품을 다 쓰면 된다는 거야?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해?"
이 혼란스러운 느낌이 사실 LCA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정직한 메시지입니다. 세상에 모든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완벽한 소재도, 완벽한 성분도, 완벽한 포장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구 환경 문제는 “유리,” “천연”과 같은 하나의 단어로 해결될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LCA는 그 복잡함을 단순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복잡한 데이터 앞에서 이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우리 브랜드가, 우리 제품이, 지금 가장 줄여야 할 환경영향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데이터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친환경이 시작됩니다.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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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아모레퍼시픽 지속가능경영센터
지속가능성을 번역하는 해설러
  • 지구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지속가능경영센터까지 흘러 들어온 사람
  • 친환경이 의무가 아니라 전략이 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어서 오늘도 브랜드와 지구 사이 어딘가에서 열심히 번역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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