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 불, 바람, 물, 마음—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어릴 적 TV에서 보던 ‘출동 지구특공대’의 주제가가 요즘 들어 자꾸 떠오릅니다. 다섯 명의 주인공이 힘을 합쳐 영웅이 탄생되던 그 장면처럼, 갑자기 아모레퍼시픽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지하에는 지열 시스템이 있어 ‘땅’을 품고 있고, 사업장 곳곳에는 태양광 패널이 있어 ‘불’을 담고 있습니다. 22년에는 제주 북촌리 풍력발전과 장기로 가상 전력 공급계약(VPPA)을 체결하며 ‘바람’을 얻었고, 오산 뷰티파크에서는 빗물을 모아 다시 ‘물’을 순환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 우리야말로 현대판 캡틴 플래닛이 아닐까요?
주위에서는 나이가 티 난다며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고 받아보는 요즘입니다.

2 2025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은 전사에서 재생전력만 사용합니다.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한다는 관점이 생소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만큼 쉽지 않기도 합니다. 한전에서 일반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전기보다 재생에너지는 비싸기도 하고, 전환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일부 제한적이거나 다양한 규제와 방법들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모레퍼시픽은 무려 4년 전, 글로벌 이니셔티브(RE100)에 가입하며 올해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모든 사업장의 최대한 가능한 곳에 태양광을 설치해왔습니다. 그리고 2022년 기업의 전력거래 관련 정책이 시행되자마자, 경북 상주와 충남 당진의 태양광 발전소와 20년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제주에서 풍력으로 발전된 전력도 장기간 가상으로 확보했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전력 사용량이 많지 않은 사무실 등을 고려해 나머지는 녹색 프리미엄 요금제로 채웠습니다.

그렇게 작년에 생산사업장과 물류센터의 전기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며 전사 기준 아모레퍼시픽의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70%를 넘어섰죠. 올해는 본사, R&I는 물론이고 각 지역과 직영 매장까지 포함해 전사 기준 100% 달성이 목표입니다.

이제 진짜로, 놀랍게도!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화석연료가 아닌 땅과 태양, 바람에서 온 에너지들로 대체됩니다.

3 왜 그렇게까지 하나요?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업무를 진행할 때 담당자로써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나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만 사겠어요!”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그러면 정말 좋겠네요), 밸류체인이나 수출 규제로 강제되고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나마 탄소발자국이나 제품의 환경정보를 공개 의무 정도는 여기저기서 시작될 가능성은 있지만요.

담당자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 전환은 “우리가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기후 위기 시대에 리더십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소통하고 “향후 재생에너지 가격과 화석연료의 가격은 골든크로스를 이룰 것이다”라며 설득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깨달았던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생산한 수천 개 제품의 LCA(전과정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마주했을 때였죠. 그 데이터는 말 그대로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재생 전력으로 100% 전환된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전과정 기준 탄소발자국이 7~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제조 단계만 놓고 보면 탄소배출량이 무려 약 60%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재생에너지로 탄소발자국을 10% 줄인 제품 1개는 500ml 페트병 2개(각 11.2g 가정) 만큼의 플라스틱을 생산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만약 시장에서 이런 제품 10만 개가 대체된다면? 20만 개 페트병의 무게에 해당하는 플라스틱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회피¹⁾하는 효과가 생깁니다.

1) 회피 배출(Avoided Emissions)은 제품·서비스가 기존 대안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한 효과를 정량화한 개념입니다. (출처: WBCSD, Guidance on Avoided Emissions v2.0)

4 ‘착한 기업’의 이미지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활동이 단순히 좋은 일,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가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직접 선택하고기여하는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온실가스를 줄인 제품을 구매하는 활동 자체가 제품 생산 모든 과정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후와 환경에 긍정적인 제품 하나하나의 개선이 누적되면 ’회피 배출’을 포함하여 연계 효과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산업 전반의 탄소 집약도를 낮추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관여하는 ‘제조’ 영역부터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과정 관점에서 보면, 이 변화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과제였습니다.

더 나아가 LCA 데이터는 그 변화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그리고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말이죠.
그 결과, 제품을 개발하는 마케터, 연구원, 포장재 부서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킥스타터 역할을 할 항목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전과정에서의 환경영향 최소화 고려 요인

사실 이런 요소들은 에코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곁에 자리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량화를 통해 확인된 파급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 이상입니다. 그리고 LCA 기반 의사결정은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브랜드 경쟁력과 시장 신뢰를 높이는 더 똑똑한 전략입니다.

이제는 함께 측정하고 개선하는 구조가 모든 과정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측정으로부터 시작된 오늘의 작은 변화는 내일의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결국 산업의 방향을 바꿔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