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조경 대표 정영선 조경가 Part 1 - AMORE STORIES
#선택의 정원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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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조경 대표 정영선 조경가 Part 1





나무를 떠난 씨앗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아직 닿지 못한 곳으로 향하기 위한 씨앗의 여정은 언제나 대담한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한 포기 풀, 꽃과 나무에는 우리를 비춰볼 수 있는 삶의 자세와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식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꿈을 이루어 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960년, 유럽 시찰 당시 경험했던 광활한 라벤더 밭의 보랏빛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회장에게 식물의 힘에 대한 믿음을 더욱 심어주었지요. 꽃과 식물에서 업(業)을 시작해 가장 한국다운 화장품을 소개하고, 우리를 대표하는 차를 대접하고, 더 나아가 식물원을 열어 사람들에게 쉼을 선물하고 싶다는 소망.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 안에서 꾸준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숲을 이루게 한 근원은 식물 아닐까요?

[선택의 정원] 프로젝트는 식물의 무한한 가치와 그 힘을 믿으며 아모레퍼시픽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마주했던 대담한 선택과 여정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각자의 자리에서 크든 작든, 매일 선택의 기로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첫 번째 스토리로, 식물의 힘을 믿으며 대담한 선택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간 조경의 대가(大家) 한 분을 소개합니다. 나무와 꽃, 풀 한 포기조차 가치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며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정원을 만들어 온 정영선 조경가와 그녀가 전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그린 힐러, 조경가


앤데믹 시대로 가까이 가면서 오프라인 공간의 경험을 선호하는 MZ세대는 자신들이 집 안에 만들었던 다정한 정원을 넘어, 전문가의 손을 거친 크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서울식물원, 디올 성수, 피크닉 전시를 방문하며 아름다운 정원에서 치유와 사색을 경험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또 다른 트렌드로 자리 잡았죠. MZ세대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공간들을 만든 조경가는 누구일까요. 왠지 힙한 스타일의 젊은 조경가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MZ의 취향을 저격한 조경가는 바로 1세대 조경가로 널리 알려진 정영선님입니다. 역시 전문가의 구력은 쉽사리 숨겨지지 않는 듯 합니다.


정영선님이 설계한 피크닉 옥상 정원 / 사진 제공: 피크닉 piknic


정영선님이 조경 설계에 참여한 서울식물원 전경(왼쪽), 디올 성수 정원(오른쪽)




서울대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 최초의 여성 기술사이시죠. 엄청난 이력만큼 예술의 전당, 선유도 공원, 피크닉, 디올 성수, 아모레퍼시픽 본사 등 지금까지 작업하신 조경 프로젝트도 엄청난 규모입니다. 우리나라 조경 역사를 이끌어 온 산증인이실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조경’하면, 공공기관에서 하는 조경 사업이 주였어요. 어떤 가로수를 심을지, 그 아래 뭐를 심을지 이런 방향으로 조경 작업이 진행돼 왔죠.

가로수를 중심으로 하는 그런 큰 규모의 조경을 한동안 해오다가, 조금씩 꽃이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야생화를 대량으로 심기도 하고요. 점점 조경 분야가 확산되면서 나무나 관목만 심는 데서 꽃이 많은 공간을 넣기 시작하면서 정원에 대한 요청이 생긴 거죠.

서안조경 사무실에서 정영선님의 모습




사람들이 꽃을 심고 싶어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정원의 모습이 점차 자리를 잡았군요.


그때는 이미 영국에서 정원 공부를 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시에서는 도시 미화를 목적으로 꽃을 많이 심겠다는 생각이 있고, 꽃을 심는 사람들이 찾게 되니까 당시에 정원 설계, 공사 등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죠. 한국의 전통 경관에서 차근차근 발전해온 것들보다는 꽃이 주목받게 됐는데,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시민들의 눈이 즐겁다면 그것도 의미 있고 괜찮은 일이지요.



디올 성수, 북촌 설화수 및 오설록 하우스 등 선생님이 작업하신 공간에 MZ세대들이 찾아오면서 열광하고 있어요. 젊은 세대는 정원에서 소위 힐링을 얻는다고 하더라고요.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정원 풍경

제가 작업한 수없이 많은 공원과 정원 등에서 마음이 평안해지고 회복을 얻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모든 공원과 정원, 하다못해 내가 가꾸는 조그마한 마당의 뜰에서라도 내가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거기 가서 잡초를 뽑거나 물을 주거나 주변에 있는 새들이 노는 걸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 지고, 치유되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럼, 치유의 정원이 되는 거죠. 그게 식물의 힘이자 정원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들도 이런 식물의 힘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꾸 정원으로 찾아오겠죠.



선생님이 설계하신 선유도 공원에도 꽃을 많이 심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유도 공원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선유도 공원뿐만 아니라 ‘서안조경’이 만든 공간들은 공원이든 정원이든, 가로 경관이든, 다양한 주제로 많은 꽃이 심겨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어떤 여자분이 삶을 마감하려고 선유도 공원에 갔다가, 문득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감사하죠. 도시에는 이런 공원도 있고 저런 공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돗자리 깔고 밥 먹고 자전거를 타는 것만이 아니고요. 공원도 그렇고 정원도 그렇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하고, 쉬고 싶으면 쉬는 자유로운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선유도 공원의 모습 / 사진제공: 선유도 근린공원 공식 홈페이지(왼쪽), 한국관광공사 공식 홈페이지(오른쪽)




특히 축구장과 대형 주차장 설계로 예정되어 있던 샛강에 생태공원을 조성하자고 설득하신 일화는 정말 유명하죠. 워낙 유명한 일화이지만 한 번 더 소개해주신다면요?


제가 당시 한강자문위원으로 샛강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샛강을 일부 메워서 축구장과 대형 주차장을 세운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놀랐던지. 한강관리사업소장을 모시고 샛강 일대를 거닐며 설계를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죠.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도 읊어주면서요.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전집>, (민음사, 2015)


이 시를 읽어 주고 샛강에 어울리는 꽃습지 식물들, 버드나무들이 자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했어요. 축구장은 지천에 많은데, 물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샛강에 생태공원을 만든다는 게 미래 세대나 한강을 위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죠. 땅의 쓸모에 있어서는 무조건 멀리 봐야 한다, 후손들이 어떤 땅에 살게 될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한강관리사업소장이 제 뜻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샛강 생태공원 조성에 현실적인 문제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비용이 들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안 그래도 한강관리사업소장이 저한테 비용을 묻더라고요. 제가 제안을 했으니 책임감을 좀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한 푼도 안 받을 테니까 대신 조류학자, 곤충학자, 어류학자, 식물학자 이런 전문가들을 많이 모아서 자문 충분히 받으면서 자연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성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조성된 게 샛강 생태공원이에요.


샛강 생태공원 조성 당시(위) 1998년의 생태공원 모습(중간) 조성 후 2002년의 모습(아래)




담담하게 이야기하시지만, 대담한 행보로 느껴집니다. 대담한 결정을 하기 위한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시는지요.


사실 모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질(quality)로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은 있었어요. 그게 결국은 제가 누군가를 설득하는데 큰 용기의 원천이 되더라고요.



조금 더 나아가서, 선생님에게 자연은 어떤 존재인가요?


정원을 이루는 자연은 존중해야 하는 존재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녹음이 짙어지고, 가을이 오면 단풍을 이루고, 겨울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잎이 져요. 이런 변화를 우리는 존중해야 하잖아요. 자연은 보면 볼수록 많은 이야기를 나눠줄 수 있고,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걸 줄 수 있는 존재예요. 나태주 시인이 그랬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근데 자연은 자세히 안 봐도 예뻐요.(웃음)


서울식물원의 ‘초대의 정원’ 및 가을 풍경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작업하시는 마음 덕분인지, 여전히 손으로 작업하시는 모습이 어딘가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영선님이 직접 그린 도면(왼쪽), 스케치 도구의 모습(오른쪽)

지금도 컴퓨터로 도면을 안 그려요. 기계로 그리는 그림이 싫더라고요. 공사하려면 컴퓨터로 작업한 도면이 있어야 하긴 해서 직원들한테 손으로 그린 도면을 컴퓨터 작업으로 옮겨달라고 하고 보면, 인간미가 하나도 없어요. 맛이 안 나는 거죠. 저는 현장 가면 마지막까지 제 손으로 직접 그린 도면으로 작업해요. 작업 현장에는 아직도 살다시피 하고요.



조경하실 때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도 있으실지 여쭙습니다.


건축과 다르게 조경은 공원, 녹지, 하천 유역, 산이든 오늘 내가 심은 식물이 그대로 안 있잖아요. 한 달도 그대로 안 가거든요. 심는 그 순간부터 계속 변해요. 조경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이해하고, 식물의 크기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느 한 시즌에 꽃 피는 걸 정하면 그 꽃이 지고 나면 다음 시즌 꽃이 없잖아요. 이른 봄에는 어떤 풍경일지, 초여름은 어떤 상태일지, 가을, 겨울은 어떻게 되는지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고 디자인해야 해요. 그리고 꾸준히 관리하고 보살펴줘야 하죠.


정영선님의 자택 정원 풍경 1






풀 한 포기, 잡초 하나도 모두 가치 있는 생명체로 대하시는 식물을 향한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너는 잡초니까 뽑아야 하고, 너는 귀여운 꽃이니까 살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꼭 잡초를 뽑을 때 미안하다고 해요.(웃음)

정영선님의 자택 정원에서 일하시는 모습




이야기를 들을수록 선생님의 조경 철학은 시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전시 개념의 조경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부족해요. 딱 그 상태로 전시되면 되니까요.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네(식물)들의 시간 속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 데나 딸기를 참 잘 심어요. 딸기는 딸기밭에 심어야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딸기 이파리 단풍색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심어 놓으면 진짜 건강해요. 일하다가 배고프면 먹고요.(웃음) 가을에는 단풍이 예쁘지, 여름에는 주스 만들면 맛있고요. 꽃도 이쁘고 열매 맺히는 것도 예쁘고 좋잖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그대로의 다양한 모습을 최대한 존중하고 끌어내는 거죠.



선생님의 사적인 정원도 궁금해요. 지금 양평 댁에 선생님만의 작은 정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정원의 모습도 소개해주세요.


우리 집 정원 현관문 근처에는 할미꽃을 심었어요.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없어요, 정말. 할미꽃을 돈 주고 심는 사람 없잖아요. 근데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할미꽃이 날아가는데 처음부터 멀리 씨앗이 못 날아가잖아요. 시간에 따라 바람에 따라 점차 점차 할미꽃이 정원에 퍼져 나가니까 정원에서 그런 걸 보는 재미가 크죠.


정영선님의 자택 정원 풍경 2




선생님이 심는 식물을 보면, 우리나라 자생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1970년도 초에 혼자서 독일에 가든쇼를 보러 갔는데,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보는데 온통 우리나라 꽃 천지인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꽃 취급도 안 하는 꽃들이 어엿하게 ‘코리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 꽃이 중요한지 모르고, 외국 꽃만 찾던 게 너무 민망했어요. 식물 공부를 새로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우리나라 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몰라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노루오줌 같은 것도 자생종은 산비탈에 군락을 이룬 모습을 보면 정말 너무 예쁘거든요. 세계화도 우리 것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모레퍼시픽은 꽃과 식물을 기반으로 세워진 회사잖아요. 그런 식물을 향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아모레퍼시픽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피크닉 옥상 정원 내 꽃의 모습 / 사진 제공: 피크닉 piknic






삭막한 빌딩 숲이 펼쳐지는 도심에서는 특히 작은 공간이라도 자연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정원의 존재가 꼭 필요합니다.

정영선 조경가는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정원의 경치를 애써 일부러 만들지 않습니다. 그가 심은 나무와 꽃, 풀들이 시간이 흐른 후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가 함께 자라나길 바랄 뿐이죠.


아모레퍼시픽 21층 장영실, 집현당 전경








억지로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것,
정영선 조경가에게 아름다운 정원이란
시간이 흘러 비로소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정원입니다.
그녀에게 있어 조경의 화두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정영선 조경가의 대담한 선택은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정영선 조경가 인터뷰 Part 2에서는 정영선님이 참여한 아모레퍼시픽의 프로젝트를 살펴보면서, 창업자 서성환 선대회장 때부터 식물을 향한 진정성을 지켜왔던 아모레퍼시픽의 헤리티지를 함께 만나봅니다.



사진 / 서안조경, 피크닉 piknic, 아모레퍼시픽 공간기획팀 제공
에디터 / 로우프레스
기획 총괄 /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전체 인터뷰, 영상, 원고에 대한 저작권은 뉴스스퀘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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